에우테르페의 소설

[논컾]최초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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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논컾 자캐 페어 - 『최초의 임무』

Keywords : 크리스마스 / 임무 / AU

에우테르페 소설 中 겨울 타입 글 커미션

ㅇㄹ님 연성 교환 ⓒ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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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1


최초의 임무

12월 24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천지이건만, 겨울 하늘은 잿빛으로 가라앉은 채 눈은 한 움큼도 흘리지 않는 뻔뻔함 마저 보였다. 이대로라면 이브인 오늘이 지나도 눈이 내리지는 않으리라.

며칠 전, 임무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을 나온 후유카와 신지는 어젯밤 경사스러운 일을 달성한 참이었다. 임무를 10번 한다면 한 번쯤 후유카가 압도적으로 리드해 성공시키는 날이 있었는데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그 최초의 임무에 신지가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고, 후유카 또한 뿌듯한 마음에 어깨가 들썩일 정도였다. 최초라는 말은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것이란 뜻. 후유카는 제가 완수한 임무를 횟수에서 확률로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맛있는 걸 사 먹으러 가자고 하던 신지의 말을 무시하고 배달이나 시켜서 방 앞에 둬 달라는 말을 해 버렸다.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는 어지간히 기분이 좋았나 보다.

후유카는 흐린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 들고 출장지 근처의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신지가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부러 거절하곤 혼자 다녀온 참. 버디 없이 돌아다니는 거라 해도 요 앞이고 잠깐이고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불확실한 요소를 조금이라도 없애고 싶었다. 뇌리 어딘가에 깊이 박혀 무의식이든 의식 중이든 상관없이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는 이유. 바로 그녀에게 내린 저주 때문에.

‘넌 네 버디 때문에 녹아 없어질 거야.’ 저주의 악마는 지상에서 사라졌지만 그 저주의 힘 또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저주를 곧이곧대로 인식한 후유카는 제 버디와 닿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요즈음엔 왠지 모르게 부쩍 우울해지는데, 그로 인해 저주와 관련된 악몽까지 꾸곤 했다.

“빨리 봄이 왔으면… 이, 이런 불유쾌한 계절 말고.”

계절을 그리며 봄을 부르짖어도 한기가 전신을 두껍게 감쌀 뿐. 추위에는 강한 그녀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감정이 부쩍 계절을 타는 것도 같았다. 겨울이 주는 우울한 무게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호텔 근처까지 오자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더해졌다.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신이 묵는 호실이 있는 층까지 올라가자 더더욱. 출장 전, 박박 우겨서 일부러 한 층 다른 방으로 배정받았는데 괜한 호들갑이었나. 그냥, 같은 층으로 할 걸... 그런 생각을 하며 객실의 문을 닫았다. 철컥.

외출복 그대로인 차림으로 침대 가로 다가가 그 위에 쓰러진다. 눈을 감았지만 잠에 들 수는 없었다. 피로함으로 인해 눈앞까지 밀어닥친 꿈을 거부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최대한 노력했다.

이제 임무도 끝났으니 돌아갈 때까지 쉬기만 하면 되건만. 이유는 있었다. 그저 단순한 악몽 때문에 그녀는 잠이 드는 것조차 두려웠다.

저주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매일 밤 마주하게 되는 어떤 미래─후유카는 저주에 관한 악몽을 그리 불렀다─는 그녀의 무의식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불안함은 현실을 잠식해 이윽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마저 짓밟았다. 곧 감은 눈 너머로 어떠한 잔상이 비춘다.

-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먹여 살려준다니까~

- 후유카쨩도 언젠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거잖아? 희망 가져.

신지의 전언과도 같은 몇 마디가 뇌리를 떠다닌다. 후유카는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눈앞은 여전히 암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침대 시트에 머리를 처박고 있으니 당연하지. 후유카는 꾸응, 앓는 소리를 내며 비척비척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자기주장을 해댄다.

문득 신지의 방으로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곧 생각을 그만뒀다. 지금 갔다간 또 놀림받을 확률이 높았다. 무슨, 악몽을 꾸고 부모의 침실에 찾아온 어린아이도 아니고. 만에 하나 그가 오해라도 한다면─물론 그럴 일은 없지만─그야말로 불쾌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우우, 금발 벽안 꽃미남도 아닌 주제에… 아, 아니. 하지만 지금은… 조금 필요할지도… 아주 조금.”

결국 홧김에 신지의 객실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후유카였다. 훗날 그녀는 이것을 두고 매우 충동적인 결정이라 회상한다.

*

신지의 방은 딱 한층 위였기에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기로 했다. 고풍스럽지만 최대 층이 그리 높지 않은 연식 있는 호텔이었기에 중앙 홀에 난 넓은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느려지는 발걸음과 이상하게 쿵쿵 뛰는 심장.

딱히 고백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후유카는 속으로 안도 씨는 금발벽안꽃미남이 아니다, 안도 씨는 금발벽안꽃미남이 아님, 안도 씨는… 같은 말을 되새기며 눈을 질끈 감고는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대로 길게 늘어진 벽을 돌아 객실이 늘어선 복도로 가려던 참이었다.

“...도 씨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이번 임무에서도 크게 활약하셨다 들었는데...”

“...그런데 공을 전부 키사라기 양에게 넘기셨다고...”

“아, 그건 아니고. 이번 임무는 후유카 쨩의 업적이 맞아. 내가 증인이야.”

“─!”

제 이름이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구석의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쿵쾅쿵쾅─ 심장 박동이 더욱 거세졌다. 들리는 내용을 봐선 제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하하호호 웃으며 떠드는 일행을 흘겨보았다. 공안 측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는 검은 머리의 남자. 역시나 안도 신지였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실실 웃고...’

누가 봐도 적당히 웃어주며 대충 상대하는 티가 났지만, 최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부쩍 상태가 안 좋아진 후유카가 그걸 캐치하기엔 조금 힘들 정도였다. 그녀는 굉장히 심란해졌다. 그의 방으로 찾아갈까 하던 마음이 팍 가라앉았다. 두근거리던 심장 또한 잠잠해졌다.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피어올랐던 열기가 식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하얀 얼굴에 그늘이 진다. 축 처진 팔자 눈썹 아래 하늘빛 눈동자가 침잠한다. 자신은 이렇게나 우울한데 제 버디는 아주 즐거워 보였다. 그럼 그렇지, 역시 안도 씨도…

아랫입술을 꾹 짓씹고는 작은 주먹을 꼭 쥔다. 곧 냉기를 폴폴 풍기며 어딘가로 향한다.

*

“안도 씨는 정말 좋겠어요! 이번에 돌아가시면 뭐부터 하실 예정이신가요?”

“아, 그게 저기. 이제 슬슬 들어가서 쉬고 싶은 참이라.”

“어머, 죄송해요. 너무 붙잡았나 봐요.”

“그랬나 봐. 어서 들어가 쉬세요. 저희는 일이 있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뵐게요.”

“푹 쉬세요~!”

한참을 여직원들에게 시달리다 드디어 빠져나온 신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미소로 그녀들을 배웅했다. 곧 뒤돌아서 제 객실로 향하는 그의 얼굴은 피곤함과 무료함 그 자체였다.

“──그러고 보니.”

맛있는 걸 사 먹으러 가자고 하던 제 말을 무시하고 배달이나 시켜서 방 앞에 둬 달라는 말을 하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깜빡 잊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지 않은 채 삐딱하게 서서 고민한다. 후유카의 말대로 음식을 방으로 배달시켜줄까. 아직 시간도 늦지 않았고…

하나 너무 정 없어 보이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직접 사다가 전해주기로 결정했다.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신지는 반 시진 전 후유카가 나오던 호텔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그녀가 좋아하는 맵고 중독성 강한 레토르트 식품 몇 가지와 신작 초콜릿을 사 들고 복귀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그의 손에는 편의점 로고가 찍힌 비닐봉지가 묵직히 들려 있었다.

신지는 살짝 흥얼거리기까지 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후유카의 객실로 향했다. 노크를 정확히 세 번 한 후 다시 빠르게 두 번. 출장 중에 정한 둘만의 서로를 인식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습관적으로 문고리를 잡고 당겼는데, 너무 쉽게 문이 열려버렸다.

“...뭐야.”

객실 문이 열려 있었다. 부주의하긴. 흐린 눈으로 가볍게 오픈되어버린 문을 슬쩍 쳐다보고는 객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불은 켜져 있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아아, 어딜 간 거야. 후유카쨩. 정말이지 이래서 한시도 눈을 떼면 안 된다니까~”

장난스레 투덜거리며 침대 위 이불을 들춰보기도 하고 비치된 장롱을 열어보기도 한다. 그녀가 거기 숨어있을 리는 없겠지만 이건 만약의 이야기다, 만약의. 마지막으로 침대 밑과 화장실까지 꼼꼼히 확인한 신지는 후유카의 부재를 확신하고 그녀의 객실을 빠져나왔다. 바스락. 갑작스레 손목에 걸어둔 비닐봉지의 무게가 선연하게 느껴졌다.

봉투를 방에 놓고 갈까 하다가 그냥 제가 갖고 있다가 직접 전해주는 것으로 결정했다. 어차피 직접 얼굴 보고 만나서 주려고 했던 건데 정 없이 음식만 딱 놓고 가기엔 역시 좀 그러니까. 그는 계단을 가감 없이 두 칸씩 올라 금세 자신이 묵고 있는 객실에 도달했다. 후유카가 망설이며 4분 동안 미적미적 올라온 한 층이었다.

객실 문은 잠가두지는 않았고 곧 돌아올 참이라 살짝 열어두었다. 아, 이렇게 보면 나나 후유카쨩이나 똑같은 신세인가. 누가 누굴 탓할 상황이 아니네. 같은 생각을 하며 불이 꺼진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관에 있는 장에 대충 던져놓은 카드키를 주워 꽂아넣어 불을 켜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깜짝이야!”

“...”

침대 위에 무언가 있었다. 아니, 누군가가 있었다. 검은 인영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두커니 앉아 있다. 심장이 떨어질 뻔한 신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꽂으려던 카드키를 다시 현관 옆 장에 두었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곁에만 있어도 알 수 있는 한기가 자신의 정체를 피력하고 있었다.

“후유카쨩. 놀랐잖아. 304호에는 없던데 여기 있었어?”

“……”

돌아오는 반응은 묵묵부답. 푹 숙인 고개 또한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신지는 부러 장난스러운 기색으로 다가가 농담하듯 그녀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고개 좀 들어. 먹을 거 사 왔는데, 이거라도...”

탁─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파격 음이 공간을 울렸다. 신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맞은 제 손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더 놀란 건 손이 내쳐진 그가 아니라 그의 손을 내친 후유카 쪽이었다.

“헉! 이, 이게 아닌데… 죄송, 죄송해요오…! 때리려던 건 아니었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흐으…”

동그란 눈동자에서 곧 펑펑 샘이 솟을 것 같은 기운을 느끼자 신지는 허둥지둥 그녀에게 다시 가까이 다가와 달래기 시작했다.

“아, 난 괜찮아. 후유카쨩이 더 놀란 거 아냐? 무슨 일 있었어?”

“흑… 그, 그게.”

후유카는 악몽과 관련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털어놓았다. 그로 인한 자신의 감정 또한, 전부. 의외로 신지는 놀리지 않고 가만히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후유카 또한 감정에 메이지 않고 제대로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 씨는 이런 저를 이해하지 못하시겠죠. 그래서 괜히 폐가 될 것 같아서, 그냥 저는...”

“...그랬던 거구나.”

“네에...”

코를 훌쩍이며 후유카가 울먹임 가득한 눈망울로 제 옆 침대 가에 걸터앉은 신지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마치 울보 토끼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설령 그렇다 해도.”

“...”

“후유카쨩은, 후유카쨩만은 언제든지 나에게 감정을 토해냈으면 좋겠어.”

“…네에…?”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버디로써 나를 이용해도 좋다는 말이야.”

그랬다. 기억에 없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인지, 애초에 그런 기억을 만든 적이 없는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혹은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 이전에 꿨던 꿈과 헷갈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제게 통하지 않았다.

모르니까 무서웠다. 알 수 없으니까, 과거의 시간과 들이닥칠 미래가 두려웠다.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은 현재뿐이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이렇게 자신에게 솔직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기꺼웠다. 늘 두려워하는 모습만 보였던 후유카였기에 더더욱.

“─그러니까. 후유카쨩.”

“...네.”

“계절을 너무 미워하지 마.”

그런 말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담담해 보였다. 후유카는 계절을 미워하지 말라는 그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챘다. 그는 지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봄을 기다리는 제게 이브의 기적을. 성탄(聖誕)의 날,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삐빅─

갑자기 전자음이 작게 울렸다. 0시가 되었음을 알리는 시곗소리였다.

“...크리스마스네요.”

“그래.”

“...”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나간 계절을 그리며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그와 함께하는 한 ‘어떤 미래’는 다가오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후유카 또한 감히 이브의 기적을 바랐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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